알라딘

헤더배너
22,977,500원, 959권 펀딩 / 목표 금액 5,000,000원
<명상록 수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 2023-09-25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습니다.

*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 스토리
  • 구성
  • 알라딘굿즈
  • 유의사항
  • 응원댓글



기획자의 말


‘기대와는 많이 다를’ 철학서를 권하는 마음
김영하


『명상록』은 어디에나 있었다. 집에도 한 권이 있었고, 서점에는 수십 종의 번역서가 표지만 달리한 채 팔리고 있었고, 명문대학의 추천도서였고, 여러 화장실 벽에도 붙어 있었다. 2000년 전에 살았던 철학자 황제의 말을 20세기의 소년은 도저히 피해 갈 수 없었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이 책에 대한 분명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아, 서양의 『명심보감』이로구나. 좋은 말씀, 격언, 아포리즘으로 가득하리라. 삐딱한 청소년이었던 나는 오랫동안 이 책을 피했다.

하지만 피에르 아도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대한 본격적인 입문서를 썼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달랐다(‘아니 이 책에 입문서가 필요해?’). 그의 저서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었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내가 만약 이십대로 다시 돌아가 철학 개론 수업을 처음으로 듣게 된다면, 그리고 선생까지 선택할 수 있다면 피에르 아도의 수업을 듣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이가 『명상록』에 대해 책 한 권 분량으로 파고들었다니 그렇다면 『명상록』은 내가 대충 넘겨짚었던 그런 책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알아보니 피에르 아도의 『명상록 수업』은 하버드대학교 출판부에서 영어로도 번역 출간돼 있었다. 그 판본을 구해 살펴보았다. 아도의 서문은 바로 나와 같은 독자를 겨냥하고 있었다. 아도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대해 널리 퍼진 선입견을 이렇게 정리한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갈 이유를 던져주었”던 책, “어쨌든 책장을 넘기다보면 인상적이거나 감동적인 문장을 으레 만나게” 되는, “스스로 말하기 때문에 아무런 설명이 필요치 않은 그런 문장”. 그렇다. 『명상록』의 문장들은 투명하다. 그냥 읽고 아포리즘에 감동하면 된다. 그러나 아도는 “하지만 이 투명성은 속임수다”라고 부드럽게 일갈한다. 그는 고대의 저작에 다가가려면 “어떤 선입견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거의 생소해진 사고방식을 재발견하기 위해 일종의 영성 훈련 혹은 정신 수련을 해야” 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도 말한다.

아도에 따르면 아우렐리우스는 갑자기 튀어나온 천재 사상가라기보다는 그저 철학자처럼 살아가기를 원했던 인간이었다. 이 ‘철학자처럼 살아가기’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삶의 태도였다. 놀랍게도 고대의 철학자들은 지금의 우리가 흔히 떠올리게 되는 철학 이론가가 아니었다. “고대 철학자는 철학하는 사람답게 사는 자, 철학적인 삶을 영위하는 자였다”. 아우렐리우스는 그런 의미에서만 철학자였고, 『명상록』은 현대의 철학자들처럼 책이나 논문으로 발표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의 수양을 위해 쓴 글일 뿐이었다. “고대 철학자는 글을 쓸 필요가 없었다. (…) 자신의 삶으로 선택한 철학 사조의 근본 원칙을 표현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명상록』과 아우렐리우스는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다. 그는 자기가 쓴 글로 다른 사람들에게 ‘살아갈 이유’를 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멋진 금박 양장으로 제본되어 읽히리라 예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텍스트는 2000년을 살아남아 지금까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로 출판되고, 오래 사랑받고 있다.

아도의 『명상록 수업』은 철학자 황제를 만든 시대적, 사상적, 개인적 배경을 충실하게 검토한다. 그를 가르친 스승들, 그가 읽었거나 읽었음직한 책들을 통해 『명상록』이 갑자기 하늘에 뚝 떨어진 저작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철학사의 여러 사조에 큰 영향을 남긴 스토아철학의 핵심적 도그마도 하나하나 풀어 설명한다. 또한 “질서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 저작에 실은 극도로 엄정한 개념 체계가 있”음을 밝힌다. 잠언이나 ‘좋은 말씀’을 찾아 이 책을 집어드는 독자는 아마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명상록』이라는 이 고전 중의 고전이 어떻게 쓰였는가를 두루 살피고자 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사랑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해외 인터넷 서점에서 한 독자는 “집에 불이 난다면 들고 나갈 한 권의 책”이라는 짧은 리뷰를 남겼다. 이런 감상이 모든 독자의 마음에 떠오르지는 않겠지만 『명상록』이라는 작은 창을 통해 고대 로마의 사상적 풍경을 엿보고자 하는 독자, 『명상록』의 숨은 맥락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 당대 스토아철학이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고 있었는가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감상이 결코 과하다 여기지 않을 것 같았다.

복복서가에 이 책의 국내 출간을 권하는 마음이 이와 같았지만 걱정도 있었다. 결국 어떤 독자는 ‘좋은 말씀’을 찾아 이 책을 집어들 것이고, 책장을 넘기다가 곧 기대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 분명했다. 이 책은 본격적인 철학 이론서이며, 가볍게 생각날 때마다 여기저기 펼쳐 읽으면 되는 잠언집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오해되어온 『명상록』을 당대의 맥락을 바탕으로 새롭게 읽고자 하는 소수의 독자는 분명히 있을 것이며,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 책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들, “철학하는 사람답게 사는 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편집자의 소개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인간 영혼의 지침서 『명상록』
고대 그리스·로마 역사와 철학의 토대 안에서 ‘정공법’으로 해석하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쓰면서 자기 안에 혼란스러운 정념이 미치지 못할 성채를 쌓았다. 하지만 평온이 지배하는 이 ‘내면의 성채’는 철인 황제가 초월적 자기중심주의에 빠져 처박히는 상아탑이 아니라, 시야가 넓게 펼쳐지는 높은 곳인 동시에 멀리 보고 정확히 행동하기 위한 작전기지였다. 달리 말하자면, 『명상록』은 평정심을 찾아 행동하는 한 인간의 자기 수련을 위한 책이다. 그에게 평정심은 효율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었고 인간 행동은 우주와 인류 공동체라는 전체 안에서 바라볼 때만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명상록』에서 아우렐리우스는 세 가지 근본 규율을 실천하기에 힘쓴다. 정념의 편견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자연의 보편적인 흐름에서 비롯한 사건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기, 인간들의 공동체를 위하여 행동하기.
하지만 피에르 아도에 따르면 이러한 실천은 스토아철학 자체, 정확히는 당대 스토아철학의 거인 에픽테토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보여주었던 스토아철학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명상록』은 그렇기에 스토아철학의 근본 삼원 도식으로 서술되고 있고, 따라서 고대 스토아철학을 향한 1차 관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명상록』은 인간 지혜의 원천으로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읽히는 스토아철학의 명저이기에 고전 철학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필수적인 텍스트이지만, 서술 방식이나 문장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작품의 철학적이고도 역사적인 의미를 해석하는 피에르 아도의 『명상록』 강의가 탁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토아학파의 전통과 교리에 대한 깊은 공부가 뒷받침된 해석, 2세기 로마제국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풍부한 통찰을 바탕으로, 현대의 우리가 놓치고 있는 철인 황제와 『명상록』의 진면목을 똑바로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공을 초월한 인간 영혼의 지침서가 쓰인 다각적인 맥락을 이해할 때야 비로소, 함부로 휘둘리지 않는 고결한 인간 정신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_박영신

책 속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스토아주의자에게 철학은 무엇보다 삶의 방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명상록』은 부단한 노력으로 이 삶의 방식을 기술하고 언제나 바라봐야 할 이상적인 선인善人의 모범을 묘사한다. 평범한 인간은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우발적으로 행동하고, 시련에 불평한다. 선한 인간은 자기에게 달린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정의와 타인을 생각해 행동하며,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은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진리와 엄정함에 비추어 사유한다.

스토아철학적인 삶은 주로 내적 담론을 다스리는 데 있다. 개인의 삶에서 모든 것은 상황을 생각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판단”, 다시 말해 사물에 대한 우리의 내적 담론이다.

정신적, 정서적 강렬함은 금세 지나간다. 이것을 다시 일깨우려면 이미 쓰여 있는 것을 다시 읽어보는 걸로는 충분치 않다. 글이 쓰여 있는 페이지는 이미 죽은 것이다. 『명상록』은 다시 읽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쓰는 것, 쓰고 싶은 욕구가 있을 때 곧바로 글을 쓰고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행위다. 또한 공들여 구성을 짜고, 쓰고 나면 당장 효과가 스러질지라도 가장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는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물리적 구현 매체에 쓴 문자는 그 무엇도 붙잡아놓지 않는다. 모든 것은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에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쓰면서 스토아주의 정신 수련을 했다. 다시 말해 그는 자기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글쓰기라는 하나의 기술, 하나의 방법을 썼다. 내적 담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스토아주의의 도그마와 삶의 규칙을 명상한 것이다. 그날그날의 글쓰기 수련은 언제나 새롭게 다시 해야 한다. 진정한 철학자는 아직 자신이 진정한 지혜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토아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는 특히 시간을 대하는 태도, 현재에 대한 집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그로써 지금 이 순간의 비할 데 없는 가치를 이해하고 고통 또한 현재에만 경험하는 것, 느끼는 것이라는 자각을 통해 그 극심한 아픔을 완화할 수 있다.

현자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인류는 어리석다. 사람들 사이에는 이성의 부패와 일탈이 거의 일반화되어 있다. 그렇지만 스토아주의자는 사람들에게 철학을 하라고, 지혜를 수련하라고 권한다. 요컨대 그들은 정신의 진보를 믿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를 행사하는 영역은 한정되어 있다. 운명과 사건의 거대한 흐름 한가운데 탈취할 수 없는 자율의 섬이 있다. 우리에게 달린 것은 우리 영혼의 행위다. 그 행위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니까. 어떤 것을 판단하느냐 마느냐, 어떤 식으로 판단하느냐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무엇을 욕망하느냐 마느냐, 어떤 것을 원하느냐 아니냐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사물이 넘어올 수 없는 경계, 침범할 수 없는 자유의 요새, 그것을 나는 ‘내면의 성채’라고 부를 것이다. 사물은 이 성채 안으로 파고들 수 없다. 사물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전개하는 담론, 우리가 세계와 사건에 부여하는 해석을 만들지 못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우리 밖에 있는 사물은 “가만히 머물러 있고”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그것에 다가간다”고 말한다.

‘무섭다’ ‘두렵다’ ‘위험하다’ ‘가증스럽다’ ‘혐오스럽다’ 같은 술어를 제거하면 자연현상과 세상사가 벌거벗은 채로 드러난다. 그다음에는 모든 실재가 보편 자연의 관점에서 야성의 아름다움으로 지각된다. 영원한 변모의 흐름 속에서는 우리 개인의 삶과 죽음도 지극히 작은 물결에 지나지 않듯이. 우리는 으레 사물을 보던 방식을 바꾸는 행위에 힘입어 그렇게 바꿀 수 있는 우리의 힘을 깨닫는다.

스토아주의 자연학에서는 사건이 운명에 의해 빼도 박도 못하게 엮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아는 필연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자유의 섬처럼 인식된다. 이 깨달음은 우리가 자아라고 믿어왔던 것에 대비되는 진정한 자아의 경계를 설정한다. 우리는 이것이 영혼의 평정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임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자아가 나의 자아가 아님을 자각할 수 있다면 어떤 것도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진정한 자아를 의식하려면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아우렐리우스의 주장대로 우리는 “현재를 한정하고” 더이상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 것에서 우리를 분리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 과거는 이제 나와 상관없고, 미래는 아직 나와 상관없다.”

육신을 지녔다는 점에서, 가난하거나 병들거나 굶주릴 수 있고 어느 날 죽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나는 운명의 제약을 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 대해 나는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그런 것이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의 자유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현재만 우리의 능력에 달렸다. 우리는 현재만 산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현재를 의식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유를 의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으면, 과거나 미래와 구분해서 경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실재하지 않고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한낱 음표의 연속, 움직임의 연속으로 환원될 수 있는 노래나 춤 때문에 자제력을 잃어서는 안 되듯이 인생 전체를 그려보고서, 우리를 기다리는 고난과 시련을 상상하고서 실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인생도 구성단위로 쪼갤 수 있는 춤이나 노래와 마찬가지며, 그 단위의 합일 뿐이다. 단위 하나하나를 연달아 잘해내면 춤이 되고 노래가 된다. 인생도 그와 같아서 우리는 순간순간을 연달아 산다. 그리고 그 순간을 쪼개고 한정할수록 우리는 좀더 자제력을 잘 발휘할 수 있다.

죽음을 생각하면 일상은 진부한 것, 판에 박힌 것일 수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행동도 아무렇게나 부주의하게 할 수 없다. 자기를 표현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행동에 온전히 임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더는 기다릴 수도 없고 미룰 수도 없다. 순수한 의도에서 “온 영혼을 바쳐” 행동할 수밖에 없다.

과학은 신과 영혼을 파괴할 수 있었으나 『명상록』은 그 생명력과 진실로 인하여 여전히 젊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종교는 예수의 종교와 마찬가지로 절대적 종교였다. 고도의 도덕적 양심으로 우주 앞에 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렇다. 이 절대적 종교는 어느 족속, 어느 국가의 것이 아니다. 어떤 혁명, 진보, 발견으로도 그 종교는 바뀌지 않는다.

세계문학에는 설교하는 자, 교훈을 주는 자, 검열하는 자가 많다. 자기도취, 빈정거림, 냉소, 신랄함으로 꾸지람하는 자도 많다. 그러나 스스로 인간답게 살고 생각하기 위해 자기를 끊임없이 다잡는 인간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충만한 의식과 명철함으로 순간순간을 온전히 살아내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지만, 우리에겐 그 말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것만 같다.

차례


서문

I. 철인 황제
II. 『명상록』 개괄
III. 정신 수련으로서의 『명상록』
IV. 철인 노예와 철인 황제—에픽테토스와 『명상록』
V. 에픽테토스의 스토아주의
VI. 『명상록』의 스토아주의—내면의 성채 혹은 동의의 규율
VII. 『명상록』의 스토아주의—욕망의 규율 혹은 운명애
VIII. 『명상록』의 스토아주의—행동의 규율 혹은 인간을 위한 행동
IX. 『명상록』의 스토아주의—덕과 기쁨
X. 『명상록』을 통해 본 아우렐리우스

결론


참고문헌
찾아보기

지은이 및 옮긴이 소개


지은이 피에르 아도 Pierre Hadot
서양 고대 철학 연구의 거장으로 특히 스토아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에 관한 정통한 연구로 알려져 있다. 1922년 프랑스 랭스에서 태어난 그는 1944년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으나, 가톨릭 교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경계하는 교황 비오 12세의 1950년 칙서 「후마니 제네리스Humani generis」가 발표된 후로 가톨릭 사제직을 그만둔다. 1961년부터 20년간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원장을 지냈고, 1982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서양 고대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하다 1991년부터는 명예교수로서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 연구에 몸담았다.
프랑스에 처음으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소개한 이들 중 하나로 알려진 아도는, ‘정신적 수련'으로서의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분석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며 이는 미셸 푸코가 <성의 역사>를 집필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에피쿠로스주의와 스토아주의가 자기 자신은 물론 현대인들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양분을 제공할 것이라 믿으며 일평생 고대 철학 연구에 매진하다 2010년 서거했다.

옮긴이 이세진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철학을 만나는 시간』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리오타르, 왜 철학을 하는가?』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에코의 위대한 강연』 등이 있다.

도서 정보




도서명: <명상록 수업>
분류: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 서양철학
판형: 140*210(mm) / 460쪽 예상
출간 예정일: 2023년 11월 1일
정가: 25,000원
펴낸 곳: 복복서가

* 표지 및 상세 제작 사양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상품구성 상세 보러가기 >


1번. 22,500원 펀딩
· <명상록 수업> 도서 1부
· 후원자 명단 인쇄 엽서 삽지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

2번. 27,500원 펀딩(품절)
· <명상록 수업> 도서 1부
· 소설가 김영하x복복서가 박영신 편집장 대담(300명 한정)>>선착순 종료
· 후원자 명단 인쇄 엽서 삽지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

알라딘 굿즈 상세 보러가기 >




※ 해당 상품은 선착순 모집 마감 되었습니다.



상품구성

1.  22,500원 펀딩
  • <명상록 수업> 도서 1부
  • 후원자 명단 인쇄 엽서 삽지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
2.  27,500원 펀딩
  • [세트] 명상록 수업 + 대담
  • 후원자 명단 인쇄 엽서 삽지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 11,000,000원 이상 펀딩
    달성

    펀딩금액의 5% 추가 마일리지 적립
  • 9,000,000원 이상 펀딩
    펀딩한 금액의 3% 추가 마일리지 적립
  • 7,000,000원 이상 펀딩
    펀딩한 금액의 2% 추가 마일리지 적립
  • 5,000,000원 이상 펀딩
    펀딩한 금액의 1% 추가 마일리지 적립
※ 추가 마일리지는 도서 출고일 기준 3주 이내에 100자평을 작성하신 분께만 적립되며,
펀딩(투자)하신 금액에 비례해서 적립됩니다. (출고 시 이메일 및 문자 안내가 발송됩니다.)




※ 알라딘 굿즈가 포함된 구성에 펀딩하셔야 받을 수 있습니다.



  • 도서가 포함된 상품에 펀딩하신 고객님께는 도서가 출간되는 즉시 배송해드립니다.
  • 알라딘 굿즈는 도서가 배송될 때 함께 보내드립니다.
  • 1권 1쇄 또는 2쇄, 부록이나 책갈피 등에 표기되는 후원자명 표기 여부 및 표기를 원하시는 후원자명은 펀딩 단계에서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제작사의 사정으로 출간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 목표 금액이 달성되지 않으면 펀딩이 취소되고 모두 환불됩니다. 환불 시점은 펀딩 종료일로부터 2주 후입니다.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는 책 출고일 기준 3주 후 일괄 지급되며 기간 내에 100자평을 작성하신 분께만 적립됩니다. (출고 시 메일 및 문자로 안내되는 내용을 참고해 주세요.)
  • 추가 마일리지는 펀딩(투자)하신 금액에 비례해서 적립됩니다.
  • 펀딩하신 상품을 취소/반품하시면 지급된 추가 마일리지도 회수됩니다.
해당 펀드와 무관하거나 응원댓글 성격에 맞지 않는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Comment_page